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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급식에 관한 서울시 투표를 바라보는 시민사회단체쪽 입장


상식이 무너지고 보편적 가치가 개똥 취급을 받는 상황을 보셨는가. 살면서 적지 않은 일들을 보아왔지만 이번 무상급식 주민투표 같은 황당한 상황은 처음이다. 본질이 뒤틀리고, 취지가 왜곡되고, 민주적 절차가 무시됐다.

 

주민투표? 아니다 ‘오세훈 투표’다

 

평범한 시민도 아닌 서울시장이 백주에 아이들과 시민을 볼모로 잡아 성립될 수도 없는 주민투표를 적법인 양 위장해, 아이들의 점심식사를 보수와 진보의 대결 구도에 던져 넣었다. 주민투표가 아니다.

 

▲엄격히 말하자면 ‘오세훈 투표’다. 이번 주민투표는 주민투표제의 취지에 전적으로 어긋난다. 시의회의 입법권을 무시한 시장이 자신의 업무 영역에서 감당해야 할 몫을 부당한 방법으로 시민들에게 전가한 사건이다.

 

 

주민투표제는 지방정부의 전횡과 독단을 막기위해 주민들이 행사할 수 있는 견제장치다. 때문에 주민투표 청구자는 반드시 주민들이어야 한다. 시장 자신이 주민투표를 요청할 수 있지만 “지방의회 제적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의 동의을 얻어야 한다(주민투표법 제9조 6항)”고 돼 있어 ‘주민 청구’ 취지를 보호하고 있다.

 

이번 서울시 주민투표는 주민들이 시장을 견제하기 위해 동원되는 수단인 주민투표가 엉뚱하게 변질돼 시장이 야당을 견제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 시정(市政)의 전횡을 막는 장치가 완전히 성격이 다른 ‘괴물’이 되고 말았다.

 

市長 견제 수단인 주민투표, 야당 견제와 정치야욕으로 전락

 

이번 주민투표는 애초부터 공정성과 객관성을 담보하지 못했다. 주민투표 실시요건에 충족되는 지를 확인하고 모든 절차를 공정하게 관리해야할 책임이 자차단체장에게 있다. 시장은 ‘공정한 관리자’의 역할을 해야 하지만 황당하게도 서울시 주민투표의 청구자는 사실상 오 시장이다.

 

시의회가 무상급식 조례를 제정하자 이에 반발한 오 시장이 조례공포를 거부하고 주민투표 실시를 주장하면서 시작된 게 이번 주민투표다. 주민투표제도에 의해 감시를 받아야 할 시장이 되레 주민투표 청구자가 돼 야당과 싸움을 하고 있다. 주객이 전도되고 갑과 을이 뒤바뀐 서울시 주민투표는 출발부터 불공정했다.

 

 

 

사실 주민투표의 대상도 아니었다. 지방자치법에 의하면 시의회가 결의한 조례에 대해 시장이 공포를 거부하는 경우, 시의회는 재의결에 부칠 수 있다. 재의결에서 절대다수로 통과한 조례는 무조건 확정된다. 지방의회의 입법권 보장을 위해서다. 확정된 조례에 대해 시장이 반발할 수 있는 권한은 오직 한가지. 대법원에 소를 제기하는 것뿐이다.

 

오 시장은 시의회의 재의결에 반발해 대법원에 소를 제기해 둔 상태다. 그런데도 시장 측근들을 동원해 주민투표 청구를 강행했고, 요건에 성립된다면서 주민투표를 발의했다. 오 시장의 주민투표 발의는 사실상 무효에 해당한다. 또 주민투표의 ‘공정한 관리자’로서의 책임을 고의로 방기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위법, 오도, 변질, 왜곡, 불공정...문제 투성이

 

현행 주민투표법(제7조 2항)에 의하면 “재판중인 사항”에 대해서는 주민투표에 부칠 수 없다고 못박고 있고, 지방자치법에는 조례의 효력은 대법원에 제소하는 것으로만 다툴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오 시장의 주민투표 발의는 주민투표법과 지방자치법 모두에 위반되는 행위다.

 

위법 사실은 또 있다. 현행 주민투표법 제7조에는 은 “국가 또는 다른 지방자치단체의 권한 또는 사무에 속하는 사항”에 대해서는 주민투표에 부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무상급식 문제는 서울시 소관이 아니라 서울시 교육청이 주관해야 할 사안이다. ‘예산 보조’ 등 연관성이 있다는 이유로 서울시가 나서서 교육청 사안을 주민투표에 부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부정행위로 얼룩진 주민투표다. 오 시장이 서울시 투표권자 80만여명의 서명을 받았다며 주민투표 발의 요건을 충족시켰다고 주장했지만, 열람 과정에서 명의 도용, 명부 위조, 규정에 맞지 않은 서명지 사용 등 잘못된 서명이 전체의 40%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대해 서울시는 “어쨌든 유효 서명 40만을 넘었다”고 주장하며 주민투표 발의는 적법하다고 우긴다.

 

 

웃기는 일이다. 남의 답안지를 커닝하다가 감독관에게 들킨 학생이 몇 문제의 답만 배꼈을 뿐 나머지는 본인이 푼 것이니 커닝한 부분을 뺀 나머지 답안은 인정해 달라는 식으로 생떼를 쓰는 거나 마찬가지다.

 

원래의 쟁점에서 완전히 비껴나 있다. 주민투표에 대한 찬반을 묻는 투표가 아니라 두 개의 안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투표다. 내용은 오 시장이 주민투표를 제안할 당시에 전혀 없던 것으로 대체돼 있다.

 

오 시장 주장은 시의회안 75%만 하자는 것, 25% 때문에 주민투표?

 

‘2014년까지 초중고생 50%를 대상으로 단계적 무상급식을 하는 방안(서울시안)’과 ‘2014년까지 초중학생 전원에게 무상급식을 하는 방안(서울시의회안) 등 두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돼 있다. 두 개의 안 모두 ‘무상급식을 하자’는 얘기다. 범위를 조금 넓히느냐 좁히느냐 하는 차이를 두고 주민투표를 하겠다니 기가 막힐 일이다.

 

서울시 안대로 실시하면 3030억원의 예산이 필요하고, 서울시의회 안대로라면 4090억원이 소요된다. 1000억원 차이를 두고 180억 넘게 비용이 드는 주민투표를 하겠다는 거다. 대체 뭐하는 수작인가. 오 시장의 겉치레 사업 가운데 수천억 예산이 들어가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오도시킨 부분도 많다. 오 시장이 주장하는 건 무상급식 반대가 아니라 무상급식을 하자는 얘기다. 서울시의회나 야당의 주장과 대등소이한 안을 놓고 주민투표라니, 어처구니가 없어 말문이 막힌다. 차이가 있다면 서울시의회안 그대로가 아닌 75%만 하겠다는 것이다. 25%의 차이가 주민투표감인가?

 

구태여 주민투표를 하려면 곽노현 교육감의 주장처럼 ‘무상급식 예산의 30%를 서울시가 부담하는 것에 대해 찬성하는가 반대하는가’, 이렇게 묻는게 맞다.

 

 

 

시민의 판단을 흐리고 있다. 오 시장은 서울시와 야당의 주장은 ‘전면무상급식’인데 반해 자신은 ‘단계적 무상급식’을 주장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내용을 보면 그렇지 않다. 서울시와 서울시 교육청 안 역시 ‘단계적 무상급식’이다. 올해는 초등학교 대상으로 전면 무상급식을 실시하되 나머지는 2014년까지 단계적으로 확대해 나간다는 게 골자다.

 

MB 부재자 투표할 것, 청와대 개입? 위법에 동참하겠다?

 

더 황당한 일도 있다. 주민투표에 청와대가 개입하고 있다는 주장이 있다. 청와대는 이명박 대통령이 일정상의 이유로 주민투표일인 24일 보다 6일 앞선 18일에 부재자 투표를 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 대통령이 이번 주민투표에 대해 매우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내비친 것이다. 은근한 선거개입인 셈이다.

 

또 민주당은 청와대 참모 한 사람이 ‘이 대통령이 이번 투표에 승리해야 한다는 의지가 확고하다’고 말한 게 사실이라면 이 대통령이 선거 중립의 의무를 위반 한 것이라며 “(그런 발언을 한) 청와대 관계자가 누구인지 확인하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다.

 

오 시장의 ‘대선 불출마 선언’은 16일로 예정돼 있는 서울행정법원의 판결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서울시의회가 주민투표를 정지시켜 달라고 청구한 재판의 판결 직전 주민투표에 대한 순수성을 강조해 법원의 판결에 영향을 끼치려는 의도가 깔린 행동으로 풀이된다.

 

법률전문가뿐만 아니라 많은 시민들이 서울시 주민투표가 위법과 절차적 모순투성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과연 법원이 소신있는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 이 대통령이 각별한 관심을 보인 사안인 만큼 법원도 정치권력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일 것이다.

 

서울시 주민투표는 절차상의 하자와 위법행위 투성인데다가 주민투표라고 볼 수 없을 만큼 사안의 본질이 왜곡돼 있다. 더 이상 급식을 둘러싼 논란이 아닌 오 시장과 친이계의 대야 정쟁의 도구로 전락했다.

 

사법부의 올바른 판단으로 ‘오세훈 투표’ 강행이 이쯤에서 저지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