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명예 졸업제"
사실 의도는 좋다. 매번 지나칠만큼의 부담감을 극복해야하는 가수들에게, 일주일 내내 '나는 가수다'만을 위해서 온전히 힘을 쏟으라고 하는 것은 분명히 지양해야 하는 일일 것이다.
7번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총 14번이니만큼 할만큼 했고, 즐길만큼 즐겼을테니 말이다.
문제는 이게 강제적인 조항이라는 것이다.
궂이 더 하고 싶은데도 못할 수도 있는 노릇이라는 점은 얘기하지 않더라도...
과연 경력 10년 이상의 베테랑 가수들에게 그저 살아남았다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을까??를 반문하고 싶다.
물론 살아남는 것은 명예로운 것이고, 충분히 박수받을만한 일이지만, 그정도 경력의 최고 가수들이 단순히 살아남는 것만으로 안심하고, 좋아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진짜 '명예 졸업제'라는 것을 해주고 싶다면, 7번을 살아남는게 아닌, "2번 또는 3번 1등을 하면..." 이런 식의 조건이 오히려 더 이 악물고 하게 되는 요건이 되지 않을까 ???
이 가수들의 자존심이라는게 '나는 가수다'를 지탱하는 원동력이니 말이다.
생각해보면, 더욱 더 진저리가 처지는 조건이 될 수 있지만, 해냈을때의 희열은 가히 최고일 듯 한데...
조관우 : 고향역 (나훈아)
새로운 시도는 좋은데.... 글쎄...
방송상으로는 노래에 집중할 수 있고, 결정적인 순간에만 팝핀현준의 안무에 포커스가 맞춰지니 나름 멋있게 보일 수 있지만, 현장에 있는 청중평가단으로서는 화려하기만 한 팝핀에만 시선을 빼앗겨 노래 자체에는 관심이 분산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또한, 가성을 뺀 진성으로만 승부하겠다고 했는데... 초반에는 '조관우, 나름 저음도 멋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후반에는 가성인지 진성인지 모를 애매한 상태였다고도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되었건 전통가요(트로트)를 구성지게 불러제낀 것만은 틀림없다.
박정현 : 우연히 (이정선)
박정현의 특유의 창법이 있다. 몇번 얘기했지만, 필자는 그런 스타일을 별로 좋아라 하지 않는다. 필자는 그냥 명쾌하게 지르는 스타일이 좋다.
최근 몇주간 박정현은 필자가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실력을 보여줬다. 오늘 그 정점에 다다른듯 하다.
원체 잘 알려지지 않은 노래라서 걱정했다는 박정현... 노래를 이렇게 부르는데, 알려지지 않은 노래면 어떠냐???? 매니저 '김태현'의 말마따나 '박정현 대박 신곡'이 되었다.
분명 장담하는데, 이 노래에 반해서 원곡을 찾아서 들어봐도 이런 기분은 갖지 못할 것이다. 그만큼 이번 노래는 여태까지의 박정현 노래 중 '최고'라고 평할만하다.
윤도현 : 삐딱하게 (강산에)
멋지다!!!....
'나는 가수다'에 출연한 이후, 윤도현이 아닌 'YB 밴드'로서 가장 멋진 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산뜻하고, 쿨하며, 유쾌하고, 즐거우니... 제목과는 정반대의 행복한 순간을 맞이하게 되나 보다. 후후후
새로운 밴드의 출연에 제대로 자극을 받은 걸까??? (이미 지난 주 방송 전부터 '자우림'의 출연이 떠돌고 있었으니 모르진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살아남으니 결국 이런 공연도 보여주는구나!!! 싶어진다.
장혜진 : 애모 (김수희)
필자가 장혜진을 처음 봤을때 들었던 생각, '여자 김연우'....
맑고 깨끗한 음색, 자연스러운 고음, 정확한 음정과 박자, 쓸데없는 기교를 배제한 자연스러운 감정처리....가 일명 '김연우'스러운 노래 스타일이다.
언제부턴가 장혜진은 감정에 충실하기 시작했는데... 이건 마치 'BMK'가 자신의 장기인 '소울'을 버리고 '파워풀'로 흐르기 시작한 것과 비슷하게 보인다.
본인으로서는 '청중평가단'을 위한 안전한 선택이었는지는 몰라도 '여자 김연우'라는 보컬리스트를 만난 기쁨에 취해있는 필자와 같은 사람에게는 안타까운 선택으로 남게 되었다.
김조한 : 취중진담 (전람회)
물론 이게 바로 '김조한 스타일'이자 R&B 스타일일 것이다.
문제는 필자에게는 이런게 정신사납게만 느껴진다는 것이다. 필자는 확실히 차분한 R&B 스타일을 좋아하는 것 같다.
노래를 겨루는 '나는 가수다'이긴 하지만, 사실을 놓고 따져보면 결국 선호도를 평가한다는 점에서 필자와 같은 청중평가단이 있다면, 표를 얻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또 한가지, 한국 생활이 벌써 20년차는 됐을텐데, 간혹 들리는 어눌한 발음은 여전히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심지어 데뷔때도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말이다.
김범수 : 사랑으로 (해바라기)
해바라기는 듀엣이다. 그들의 대표곡 '사랑으로'는 남성 2중창이 줄 수 있는 최대 하모니가 표현된 희대의 명곡이다.
이를 혼자서 표현한다는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확실히 김범수라는 가수는 '(타고)난 가수'가 맞는 것 같다.
해바라기의 '사랑으로'는 듀엣곡이지만, 마지막에 늘 장중한 분위기를 이끌어내기 때문에 모든 공연에 엔딩곡으로 많이 쓰인다. 이는 해바라기의 특유의 음색과 하모니가 어울어져 만들어지는 건데, 그걸 김범수는 몇명의 아카펠라 그룹의 도움으로 해냈다.
심지어 함께 한 것도 아니다. 아카펠라 그룹에서 하모니를 만들었을때 앞선 '김조한'처럼 R&B 스타일로 풀어냈다. 마찬가지로 한껏 기교를 부리는 스타일임에도 정확한 발음으로 표현해내는 김범수 스타일에는 필자도 한껏 고무되었다.
노래가 끝났을때, 감탄의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정말이지 대단한 가수이고, 대단한 노래였다.
인터뷰에서 스스로 '메시지'를 주고 싶다고 했는데, 그래서인지 초반의 완벽한 발음은 감탄스러운 수준이었다. 단순히 '필'만이 아닌, 정확하게 계산해서 부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박정현이 말한 '은혜받았다'라는 말이 과언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자우림 : 고래사냥 (송창식)
예전에 조금 인기를 얻었다 싶은 밴드들은 '보컬' 외에는 전혀 관심을 받지도 못했으며, 밴드 이름보다는 '보컬의 이름'만이 알려지게 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지금의 '자우림'이란 밴드는 분명 보컬인 '김윤아'의 가치때문에라도 높게 평가되고 있는 게 사실임에도 보컬의 이름보다 여전히 '자우림'이라는 밴드 이름이 더 알려져 있다는게 신기하다. (자우림 밴드의 보컬인 김윤아의 이름을 '자우림'으로 착각하는 분들도 많다고 한다.)
여성 보컬로서도 최고의 가치를 가진 '김윤아'는 딱 필자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가수인데... 자타가 인정하듯, 여러가지 다양한 색깔을 맛깔스럽게 표현할 줄 아는 절대 매력을 갖고 있다.
결과적으로는 앞도적인 득표율로 1위를 했는데, 오랜만에 보는 시원한 여성보컬과 폭발적인 무대매너 등에 높은 점수를 준 듯 하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에 오늘의 공연 무대는 딱히 특별할 것이 없는 전형적인 자우림 스타일의 공연이었다고 생각해본다. '나는 가수다'라는 특별한 무대임을 감안하면, 너무 평범해보이기까지 한 무대였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에필로그 :
" 22.5% "
출연진과 마찬가지로 이 득표율 듣자마자, 필자도 같이 '오우~~~'라는 탄식을 내뱉었다. 끽해야 16~18%의 박빙을 보였던 요즘의 '나는 가수다' 득표율에서 실로 오래간만에 엄청난 득표율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는 요즘의 상황으로 보건데, 다음 경연때 특별한 준비없이 그냥 하던대로만 해도 탈락하지 않을만큼의 득표율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이쯤에서 또 한번, 청중평가단의 너무나 평이한 선호도 평가가 아쉽게 느껴진다.
어느 순간부터 (아니, 처음부터 그랬을지도..) 필자는 '나는 가수다' 무대를 감성(감정)이 아닌 '무대(음악)의 완성도'로 평가하게 되었다. 필자는 요즘들어 청중평가단이 그걸 좀 더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아니, 알아줘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그래야 좀 더 수준높은 공연, 좀 더 예술적인 공연 무대를 더 즐길 수 있게 될테니 말이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그저 흥겹고, 즐겁고, 소리 잘지르면 더 큰 박수를 받게 되는 현실이다. 더 웃기는 건 '감성'이란 건 그렇게 따지면서도, 깊은 감성(좌절, 슬픔 등과 같은)에만 열광할 뿐, 가장 보편적인 감성(사랑, 행복, 여유로움)에는 일절 관심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애태껏 살아남은 김범수지만, 박수받아 마땅한 무대를 몇번이고 선보였으나, 늘 냉담한 반응만 받아왔다. 결국 또 김범수는, 살아남기 위해, 탈락하지 않기 위해, 또다시 '파격'이라는 뻔한(??) 무대를 또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아무리 대중예술이기는 하지만, 가수가 공연무대의 질을 높이고자 노력한다면, 관객들도 스스로 공연무대의 높은 수준에 반응해주는 능력을 키워야하지 않을까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