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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심하긴.... 쯧쯧....

지인의 소개로 지난달부터 모 여고와 초등학교의 보드게임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여고는 처음이지만, 그래도 고2, 고3 정도면 할 수 있는게 제법 많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보드게임보다는 핸드폰이 더 친숙하고, 머리 쓰는 걸 죽도록 싫어하더군요.

그래도 돈 받고 하는 일인데, 마냥 내비둘 수 없어서 결국 제가 방식을 바꾸기로 했지요.


사실 근본적인 원인은 (제가 보기에) 같이하시는 또다른 선생님의 영향이 더 크다고 할 수 있을텐데요.

완구박람회라 부를 정도의 그야말로 애들게임만 잔뜩 가져오시는 겁니다.

저라면 절대로 수업에서 사용하지 않을 것들이지요. (저는 원래 진득하게 머리를 쓰는 걸 좋아하거든요...)


문제는 바로 이러한 애들 게임이 이제 내년이면 성인이 되는 이 친구들에게도 더 잘 통하고 있다는 겁니다.

정말이지 답이 안나오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아무리 판매자가 좋은 제품을 만들었어도 소비자가 선택하지 않으면 어쩔 수 없는 것"처럼 제가 아무리 좋은 게임을 들이밀어도 학생들이 싫다는데, 제가 어쩌겠습니까?

결국 백기를 들고, 그들 수준에 맞춰주는 수 밖에요.


ps) 살다살다 '라스베가스'조차 먹히지 않는 아이들은 처음이었습니다. 완전 깜놀... 

그런 주제에 '루미큐브'는 엄청 좋아해서, 그걸 하겠다고 엄청 싸우더군요.

결국 결론은 수준이 낮은게 아니라, 뭘 새로 배우기가 귀찮은 학생들이었던거죠. 그러니, 할리갈리 같은 완구 수준의 게임이 계속 먹히는거고요. (룰 설명이 30초면 끝나니까요...)


그런 이유로,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평소라면 절대로 사지 않을, 그런 게임들을 이번에 엄청난 거금을 들여 (거금이 들 수 밖에 없는 이유가 그런 게임들은 원래부터 아예 없었으니까요...) 싸그리 쓸어왔습니다. (그 와중에도 너무 쉬운 게임들... 이른바 유치한 게임들은 뺀걸 보면, 아직 완전히 놓지는 않은 것 같네요...)


더욱 큰 문제는... 정작 이렇게 장대하게 출격할 준비를 마쳐놨더니만, 학교에서 선생님을 바꿔달라는 요청이 왔다는 군요. (왠지 지난 직장에서 짤릴때가 생각이 나는군요.)

뭐... 갑인 학교에서 요청해 왔다는데 을이 뭘 어쩌겠습니까?

미치고 팔딱 뛸 노릇이지만, 받아들이는 수 밖에요...


도대체 이 카드 대금들은 어쩔건데???? 젠장할....



ps) 진짜 비극은 이제부터입니다.

앞서 말한 지인은 나름 이 '보드게임 교육'의 세계에서 '메인 스트림'을 이끌고 계신 분이죠.

이제까지 저는 그분과 교육 스타일이 전혀 다르기에 각자의 스타일로 나름의 영역을 장악하고 있었더랬죠.

문제는 제가 볼때, 학생들의 수준을 무시한다고 볼 수 있는 이런 난이도의 수업 방식이 학교 수업에 고착될 여지가 있다는 겁니다. 

쉽게 말해 제가 주장하는 바는 "왜? 방정식을 풀 수 있는 아이들에게, 덧셈-뺄셈을 강요하냐는 건가요?" 라는 겁니다. 물론 이해는 충분히 가지요. "그야~ 아이들이 그걸 원하니까..."

그렇다고는 해도, 아무리 '보드게임 수업'이라고 해도 엄연히 '수업'인데, 교육을 담당하는 사람으로서 이건 좀 너무한거 아닌가 싶은 겁니다.

지금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보드게임 수업과 그 수업을 담당하는 이른바 "보드게임 지도자"라는 제도를 보면, 그 수준이라는게 정말이지 끔찍한 정도입니다.

솔찍히 까놓고 말해서, "저런걸 돈 내고, 배우는 학생들이 불쌍하다~~!!" 라는 수준이지요.


상업적인 선택의 면으로 보자면, 너무나 당연한 순리같은 일이겠지만, 진짜로 "보드게임"을 아끼고, 사랑하고, 널리 이롭게 두루두루 쓰이게 하고 싶은 사람으로서는 아쉬움을 넘어 안타까움으로 다가오네요.


이런 와중에, 결국 저도 먹고살자면, 소비자(학생)가 원하는 방향으로 선회할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정말이지 서글퍼지네요.


ps) 제목에 '한심'하다고 썼는데, 혼자서 노력한다고 해서 바뀔 세상이 아니라는게 한심한건지, 결국 이런 세상에 적응할 수 밖에 없는 제 자신이 한심한건지... 저는 잘 모르겠네요.